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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술신잡/진, 럼, 보드카

럼(Rum), 희생으로 만들어진 술

작은 글라스에 들어 있는 투명한 액체, 그리고 그 위에 파랗게 타오르던 불꽃. 

처음 접했던 럼(Rum)에 대한 기억이다. 동네의 작은 바(Bar)에서 75.5%의 오버프루프 럼인 바카디 151에 불을 붙여 보이던 모습은 마냥 신기했고, 그만큼 럼에 대한 인상은 강렬했다. 다음으로 럼(Rum)을 보았던 것은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잭스패로우가 마시던 모습이었다. 두 번의 기억 모두 럼(Rum)은 매우 강하고, 거친 남자의 술이었다. 

 

럼은 희생위에 번영한 술이다

이렇듯 강렬하고, 자극적인 모습으로 기억되는 술이지만, 사실 럼(Rum) 슬픈 희생을 양분삼아 자라난 술이다. 서유럽 열강이 한창 식민지를 만들어가던 중세 무렵, 아프리카와도 교역이 시작되었다. 서유럽 열강의 무역상들은 아프리카에 재화를 공급하는 대신, 흑인 노예들을 공급 받았으며, 그들을 활용해 그 곳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어 운영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생산 활동은 원활하지 못했다. 토지도 있고 노동력도 있으나, 유럽인들에게 면역력이 없는 아프리카의 풍토병이 문제였다. 서구 열강이 골머리를 앓던 찰나,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었다. 신대륙은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좋은 환경이면서도 풍토병도 없어, 그들이 새로운 플랜테이션을 꾸리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신대륙 서인도 제도로 사탕수수 플랜트를 옮겨 갔다. 

 

유럽의 열강들에게 서인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은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하기 최적의 조건이었으며 신의 선물과도 같았지만, 그 지역의 토착민들인 인디오들에게 그것은 재앙이었다. 유럽 열강의 착취 자체도 그들에게는 힘겨운 존재였겠지만, 그들와 함께온 전염병이 더 문제였다. 처음은 천연두였다. 천연두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상당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천연두가 잠잠해질 무렵, 홍역이 다시 한 번 대륙을 뒤덮어 대부분의 인디오의 목숨을 앗아갔다. 

 

토착 노동력을 상실한 유럽 열강들은 노동력을 확보 할 방안을 강구했고, 곧 정답이 나왔다.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수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완성된 무역의 형태가, 그 유명한 삼각무역(The Triangular Trade)이다.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로 신대륙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사탕수수는 본국으로 가져가 설탕과 럼을 만든다. 럼은 다시 아프리카로 수출해 그 돈으로 흑인 노예를 구입한다. 

 

이러한 삼각무역은 서구 열강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주었으며, 그만큼 럼(Rum)은 크게 부흥하게 된다. 하지만 럼이 부흥하는만큼 신대륙으로 팔려나가는 흑인 노예는 더욱 많아졌으며, 그들의 처우는 더욱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익에 가려져, 신대륙의 토착민이었던 인디오들의 희생은 잊혀져갔다. 

 

럼(Rum)의 어원에 대한 설은 다양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사라진 영어 단어인 Rumbullion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Rumbullion이라는 말은 '흥분해서 날뛰는' 정도로 해석 할 수 있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 술을 마시고 보이는 모습이 Rumbullion하여, 그 앞 자를 따 'Rum'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만약 이 설이 진짜라면, 그 또한 참 애석한 일이다. 저도수의 술(맥주) 밖에 모르던 착취의 대상에게 독주를 팔고, 그 모습을 '흥분해서 날뛴다'고 생각하며 술 이름을 붙였다니. 

 

역시나 럼은 희생의 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