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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술신잡/술에 대한 간단 상식

위스키 아이스 큐브, 필요할까? - 직접 사용해본 후기

위스키에 재미를 붙이고자 할 때, 사게되는 아이템들이 몇 개 있다. 

내 경우에는 세 가지가 있었는데, 위스키 디캔터, 위스키 전용잔(테이스팅 & 온더락), 그리고 위스키에 넣을 아이스 큐브다. 

 

위스키 디캔터와, 온더락 잔에 담긴 아이스큐브

 

위스키 전용잔은 무조건 구매해야 하는 필수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매하길 정말 잘했다. 

위스키 디캔터는 순전히 허세용으로 구매한 아이템인데, 가끔 위스키의 코르크가 바사삭 됐을 때 꽤나 유용하다. 물론 장식용으로도 매우 훌륭하다. 

아이스 큐브는 물음표가 많은 아이템이고, 좀처럼 손이 안간다. 

 


아이스 큐브는 왜 사는가?

아이스 큐브를 샀을 때 생각의 구조를 떠올려 보면 매우 단순하다. 이유는 총 세 가지다

 

  • 위스키를 시원하게 마시고 싶다(미지근한 술은 별로니까)
  • 그런데 얼음이 녹아 위스키 맛이 변하는게 싫다(물을 탄 술은 밍밍하니까)
  • 간지가 날 것 같다(Flex)

차가운 아이스큐브가 위스키를 시원하게 해주고, 위스키를 밍밍하게 만들지도 않고, 간지까지 나니 그 당시 생각으로 아이스큐브는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주문했고, 초반에는 꽤나 자주 애용했다. 

 

위스키용으로 아이스 큐브는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나에게 아이스 큐브에 대해 물어본다면, 나는 구매를 반대 할 것이다. 물론 가격이 비싸지도 않으니 직접 경험해보고 더 사용할지 말지 결정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물어본다면 일단 반대할 것이다. 


아이스큐브가 별로인 이유

첫 번째, 위스키를 그닥 시원하게 해주지 않는다. 

아이스큐브는 얼음만큼 위스키의 온도를 내려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만 현재 온도를 잘 유지해 줄 뿐. 만약 위스키가 이미 적정온도로 보관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위 온도가 너무 높아 위스키의 온도를 보존하고 싶다면 썩 잘 맞을 수는 있다. 하지만 위스키를 원하는만큼 시원하게 해줄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하여 NYU(뉴욕주립대)에서 분석한 결과도 있다. 21℃ 정도의 위스키에 아이스큐브(아이스스톤)를 넣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위스키의 온도를 측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20분 후 위스키의 온도는 채 5℃도 내려가지 않았다. 심지어 10분 이후부터는 온도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아이스 큐브를 사용해도 물이 섞일 수 있다. 

첫 번째에서 위스키를 시원해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를 비롯한 아이스큐브 사용자들은 반박 할 수 있다. 왜냐면, 분명 아이스큐브를 넣었을 때 위스키가 시원해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아이스큐브 자체의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스큐브를 사용하고 다시 보관 할 때, 중간에는 분명 세척 과정이 있다. 그리고 세척한 아이스큐브를 마른 행주나 키친타올로 완전 건조하지 않는 이상, 물이 묻어 있는 상태로 냉동 보관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아이스큐브 겉에 얇은 얼음막이 형성될 것이고, 이 얼음들이 위스키의 온도를 내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분명한 건, 두 번째 잔부터는 위스키가 시원해지지 않는다. 

 

이 원리를 다시 생각해본다면, 결국은 아이스큐브에 붙어 있는 얇은 얼음들이 위스키에 녹아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스큐브를 사용해도 물이 조금이나마 섞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물이 섞이는게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 하지만 아이스큐브의 사용 의도와는 다르게 물이 섞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세 번째, 잔의 파손 위험이 있다. 

다른 리뷰들을 찾아봐도 자주 언급되는 내용인데, 아이스큐브에 의해서 더 비싸고 소중한 온더락 잔이 깨질 수 있다. 위에 올려 놓은 사진을 다시 한 번 보면, 총 세 개의 아이스큐브가 잔에 들어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두 개까지는 잔의 파손 위험이 적다. 하지만 세 개부터는 파손 위험이 급증한다. 

 

아이스큐브 세 개를 넣고 위스키를 마시면, 두 개는 내 입쪽으로 다가와 잔에 붙지만, 하나는 다른 아이스큐브에 막혀 오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위스키 양이 많고, 잔을 덜 기울일 때는 괜찮다. 하지만 남은 위스키가 적어 잔을 많이 기울이면, 막혀서 오지 못하던 아이스큐브가 입쪽으로 넘어지면서 잔을 강타한다. 이런 현상으로 잔을 깬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니, 아이스큐브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조심 할 수밖에 없다


위의 세가지 '별로인' 이유와 더불어 아이스큐브가 필요 없어진 것도 더이상 아이스큐브를 사용하지 않는 큰 이유다. 

 

아이스큐브가 필요하지 않게된 이유

위스키를 차게 마시지 않게 되었다. 

온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느낌이겠지만, 위스키는 실온에서도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맛도 더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서늘한 곳에 위스키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위스키를 시원하게 마실 필요성을 잘 못느끼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목적을 잃은 아이스큐브에 손이 가지 않는다.

 

얼음을 넣은 위스키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위스키에 얼음을(가급적이면 매우 큰 얼음을) 넣는 것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위스키를 시원하게 해주는 점도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이 조금씩 섞이면서 변해가는 위스키를 마시는 재미도 있다. 위스키를 마시는 법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 니트부터 한 두 방울의 물을 넣는 법, 물을 많이 넣는 미즈와리까지 물과 위스키를 조화를 노린 방법이 다양하다. 하나의 큰 얼음을 위스키에 넣는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음용법의 이점을 모두 맛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이상 아이스큐브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아직 아까운 마음에 버리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사용 할 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아이스큐브를 살지, 말지 고민중인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