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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술신잡/술에 대한 간단 상식

소주 쓴 맛의 진실 - 소주 애호가라면 알아야 할 상식

소주는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술이다. 서민의 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기치로 하여 다른 술보다 보호도 받는가 하면, 정부에 의해서 철저히 통제되기도 한다. 도수가 조금만 변해도, 냄새가 조금만 달라져도 무수한 추측과 의심, 가설과 소문들이 빠르게 퍼져나간다. 

 

여기서 말하는 소주는 전통 소주(안동소주)가 아닌 '희석식 소주'다. 곡물과 구근류를 발효 및 증류하여 만든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전통 소주(증류식 소주)와 구분하여 '희석식'이라고 이름을 정한 것 같다. 하지만 전통 소주에도 물을 타고, 위스키에도 물을 타고, 보드카와 진에도 물을 타 희석하는 상황에서, 물을 조금 더 많이 탔다고 '희석식'이라 부르는 것은 좀 이상하다. 물을 60%섞으면 증류식이고 80% 섞으면 희석식이라는 것이다. 

 

이 '희석식'이라는 말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 소주는 쌀을 증류하여 만들고, 희석식 소주는 화학적으로 만든 에탄올에 물을 섞어 만든다고 생각하며, "희석식 소주는 사실 먹을만한게 아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두 소주는 원료만 다를 뿐 둘다 곡물을 사용해 만든 술이며, 차이점은 증류 방식과, 물의 양, 그리고 감미료 정도다. 감미료가 들어간 소주이므로 차라리 '소주 리큐르'라고 부르는 것이 좀더 정확 할 수 있다(물론 법적 정의는 희석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술이 있을까. 심지어 아일레이 위스키처럼 매니악한 술도 아니면서, 사람마다 평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향을 즐기기보다는 시원함과 취하는 맛으로 먹는 술. 그 모든 이유는 희석식 소주 특유의 '쓴 맛' 혹은 '역한 맛'에 있다. 이 역한 향 때문에 도수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북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 향에 익숙해져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곤 한다. 

 

이 역한 맛의 정체는 무엇일까. 생각보다 희석식 소주의 '역한 맛'에 대해서는 공개된 바가 없다. 어떤 사람은 공업용 알코올을 희석하여 만들기 때문에 화학냄새가 난다는 주장도 하지만, 물론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이 원인에 대해 열심히 검색해봤지만, 공식적으로 규명된 자료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몇 가지 자료를 종합하여, 소주 쓴 맛의 원인에 대해 추정해보고자 한다. 

 


 

소주의 구성

소주의 맛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소주를 구성하는 성분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간단하다. 에틸렌(Ethylene a.k.a 알코올), 물, 감미료. 95% 수준의 에틸렌수용액(주정)을 물에 희석하고, 향과 맛을 내는 식물성 감미료(토마틴, 스테비아, 결정과당 등)를 섞은 술이 소주다. 

 

결국 주정, 물, 감미료 셋 중 하나 때문에 소주의 쓴 맛이 난다는 이야기인데, 물이야 그냥 물일 뿐이니 쓴 맛과는 관련이 없다. 또한 감미료는 소주의 쓴 맛을 가리기 위해, 혹은 맛을 더하기 위해 첨가하는 재료기 때문에 이 역시 관련이 적다. 만약 감미료 때문에 소주의 맛이 써진다면, 진작에 소주 회사들은 맛을 위해, 그리고 경비 절감을 위해 감미료를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항간에는 이 감미료가 정체불명이라 믿을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역한 맛이 난다고도 한다. 하지만 정부에 의해 철저히 통제 받는 술인 만큼, 소주 감미료의 대부분은 천연원료를 사용하며 인체에 유해하지도 않고, 역한 맛이 나지도 않는다. 한 때 단맛을 내기 위해 사카린(단 맛을 내는 인공감미료)을 넣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소주 쓴 맛의 첫 번째 원인 - 원료

쓴 맛의 원인이 물도 아니고 감미료도 아니라면, 당연히 남는 것은 주정이다. 소주의 주정은 곡물과 구근류(뿌리식물)를 발효 및 증류하여 만든다. 주정의 증류는 연속증류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의 순수한 알코올 성분(에탄올)만이 남는다. 완성된 주정은 대략 95%~96% 정도의 에탄올로 구성되며, 나머지 4~5%에는 수분과 기타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주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탄올의 가장 큰 특성은 무색, 무취다. 순수한 에탄올은 투명하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에탄올은 원인이 아니다. 수분은 당연히 아니므로 남는 것은 '기타 물질'이다. 소주에 대해 조금 알아본 사람들이 흔히 '알데히드', '퓨젤유', '디아세틸' 등이 소주에 포함되어 있으며, 악취를 풍기는 물질을 소주 쓴 맛의 원인으로 특정한다. 이 물질들은 실제 증류를 마친 주정에 포함되어 있는 물질이다. 하지만 정제를 거친 완성된 주정에는 이 물질들이 검출되지 않는다. 쓴 맛의 원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다른 물질이 원인이라는 셈인데, 가장 주목해야 할 물질은 '증발잔분'이라는 성분이다. 증발잔분이란 쉽게 말해 원료의 찌꺼기다. 쌀이라면 쌀 찌꺼기, 맥아라면 맥아의 찌꺼기가 조금씩 남는 것이다. 위스키에서 맥아 향이 나고, 피트 향이 나는 것, 증류식 소주에서 쌀향기가 나는 것 모두가 이 증발잔분에 있는 아로마성분 때문이다. 제품으로 출시되는 희석식 소주의 주정에는 약 0.2%~0.9%의 증발잔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주에서 느끼는 특정 '맛'에는 이 증발잔분이 관여 할 가능성이 높다.

 

증발잔분에서 내뿜는 향기(혹은 냄새)는 원료의 영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니까 라이(Rye) 위스키에서는 호밀향기가, 스카치 위스키에서는 맥아(Malt)의 향기가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희석식 소주의 원료는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희석식 소주의 주정에 사용하는 원료는 타피오카, 고구마 등의 구근류와 쌀, 보리, 옥수수 등의 곡물류가 사용된다. 그 중 구근류인 고구마와 타피오카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구근류의 증발잔분은 곡물류 대비 그 향취가 좋지 않다. 같은 구근류인 감자를 싸용해 증류주를 만들 경우에도 냄새가 별로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 희석식 소주의 주정은 1)에탄올, 2)수분, 3)기타 물질로 구성되며,

  • 기타 물질 중 원료의 찌꺼기인 '증발잔분'이 있고, 이게 냄새에 영향을 미치는 아로마 성분을 함유하는데

  • 주정의 주 원료인 타피오카, 고구마 등의 구근류의 증발잔분은 냄새가 구리다

  • 그래서 소주 냄새가 구리다

정도의 결론이 나온다. 물론 '증발잔분'에 국한해 이야기하는 것은 추정이다. 에탄올과 수분을 제외한 모든 성분이 냄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소주 쓴 맛의 두 번째 원인 - 낮은 도수

희석식 소주를 이야기 할 때 자주 비교되는 술이 보드카다. 둘다 곡류나 구근류 따위를 발효 및 증류하여 만든 주정에 물을 섞어 희석한 술이다. 차이가 있다면 희석식 소주에는 감미료가 들어가는 정도, 그리고 알코올 함량, 즉 도수다. 희석식 소주가 보통 16%~25% 사이로 희석된다고 한다면, 보드카는 40% 이상으로 희석한다. 그러나 보드카의 특성이 무색,무취,무미인 만큼, 보드카에서는 소주와 같은 쓴 맛이 나지 않는다.

 

이 쓴맛이나 냄새를 '알코올 냄새'라고 한다면 분명 보드카에서는 더 지독한 맛과 냄새가 나야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부에서는 보드카는 여과(Filtration)를 매우 열심히, 잘 하고, 희석식 소주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틀렸다. 소주도 매우 열심히 여과를하여 불순물을 거의 모두 걸러낸다. 그렇다면 원료의 차이일까? 물론 보드카에서는 타피오카 같은 값싼 구근류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고구마나 감자 같은 구근류를 사용하기도 한다. 결정적인 차이라고 보기에는 아쉽다. 소주에만 들어가는 감미료가 있지만, 앞서 말했듯 이 감미료는 소주의 맛을 좋게하기 위해(혹은 냄새를 가리기 위해) 넣을 뿐, 우리가 싫어하는 그 맛과는 관련이 없다. 

 

남는 것은 '도수의 차이'다. 이 도수의 차이 때문에 보드카에서는 희석식 소주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술의 도수가 높아지면 다른 향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독한 맛 때문에 방해 받는 것이 아니다. 에탄올은 농도가 높아지면 서로 뭉치는 성향이 있는데, 이러한 에탄올 결합체가 일종의 벽을 형성하여 다른 향이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또한 일부의 냄새가 나는 성분들은 에탄올과 결합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에탄올의 농도가 높을 수록 표면으로 올라오기 어려워진다. 즉, 보드카에도 희석식 소주에서 느낄 수 있는 이상한 쓴 맛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에탄올의 벽에 가로막혀 그 맛이 발산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희석식 소주는 에탄올의 함량이 낮기 때문에 이런 맛을 숨겨줄 충분한 방어막을 형성하지 못한다. 그래서 냄새를 유발하는 성분들이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니게된다. 이를 가리기 위해 여러 감미료를 투입하지만, 감미료는 냄새와 섞일 뿐 없애거나 막지는 못한다. 

 

만약 이를 믿을 수 없다면, 보드카에 물을 섞어 마셔보기를 권한다. 더이상 우리가 알던 그 보드카의 맛이 아닐 것이다. 숨겨져있던 특유의 향이 올라오고, 게다가 감미료까지 없으니 더 마시기 힘들어진다. 실제로 러시아에서 판매하는 20% 정도의 보다카가 있는데, 맛이 아주 형편없다고 한다. 알코올 함량과 향의 상관관계를 뒷받침 해주는 예시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위스키에 물을 섞는 것'이다. 위스키에 물을 섞으면(누군가는 몇 방울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향이 더 풍부해지게 된다. 

 

정리하자면,

 

  • 에탄올은 서로 결집하는 성향이 있는데, 희석식 소주의 농도에서는 결집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 그래서 독한 술과는 달리 특유의 냄새가 에탄올 뒤에 숨지 못하고 밖으로 퍼져 나온다.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1. 희석식 소주는 증류식 소주와 달리 구근류 등의 원료를 증류하기 때문에 특유의 냄새가 있다.

  2. 이 냄새는 보드카와 같은 고도수의 증류주에서는 에탄올에 막혀 퍼져나가지 않지만

  3. 소주와 같은 저도수의 증류주에서는 활개를 치기 때문에 특유의 쓴 맛이 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 붙이자면, 이 글은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한 추론이다. 누구도, 어디에서도 소주의 쓴맛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진실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누군가 정확한 정보를 안다면 댓글을 달아주면 좋겠다.